studio_napnap
30/05/2026
#박웅현살롱 #음감회
오늘 울컥한 플리
splendor in the grass & 쑥대머리
29/04/2026
#4월러닝결산 #겨우 100km 채움😅
근데 딱 좋음 ㅋㅋㅋ
26/04/2026
#사패산 #사운드워킹
소리에 귀기울인다는 것이 이토록
매력적인 일이었다니 #새로운취미
마무리는 순대국으로 ㅎㅎ
19/04/2026
#키다리피디의리뷰 #내이름은 #제주4.3
헤일메리 대신 이 영화를 선택한 건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봐야 할 것 같았다. 제주 4.3이라는 소재 앞에서 영화적 기대치를 높이는 건 어쩐지 예의가 아닌 것 같았고, 나는 그런 종류의 예의를 가끔 차린다.
일요일 아침 조조. 극장 안은 예상대로 한산했다. 자리를 찾으며 둘러보니 맨 뒷줄, 내 옆에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 앉아 계셨다. 코감기가 걸리셨는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훌쩍이는 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왔다. 처음엔 그냥 감기겠거니 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영화 후반, 보리밭 장면에서 그 생각이 멈췄다.
너무나 평화로운 초록빛 보리밭이었다. 영옥의 눈앞에서 정순이 총에 맞아 쓰러지고, 사람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보리처럼 하나둘씩 쓰러졌다. 그 순간 아주머니의 훌쩍임은 어느새 조용한 흐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영화 사운드를 뚫고, 극장 전체를 소리 없이 감쌌다. 나는 스크린을 보면서도 그 소리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사연이 있으시길래.*
어떤 슬픔은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몸이 먼저 안다.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다. 염혜란의 목소리인 듯한 노래가 낮고 조용하게 흘렀고, 시민 후원과 모금으로 만들어진 영화답게 수백 명의 이름이 화면을 꽉 채웠다. 그 이름들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국가가 수십 년간 외면한 것을, 이름 모를 사람들이 돈을 모아 스크린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떴다. 텅 빈 극장에 아주머니와 나, 둘만 남았다.
나는 원래 쿠키 장면이 없으면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다. 번잡한 게 싫어서. 극장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1등으로 나오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기보다, 움직여선 안 될 것 같았다.
4.3 이후로 수많은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을 제대로 위로한 권력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위로받지 못한 채 수십 년을 버텨온 사람들. 어쩌면 저 아주머니도 그중 한 분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영화의 마지막 순간마저 그분을 혼자 남겨두는 건 내가 할 짓이 아니었다.
모든 크레딧이 사라지고 나서야 아주머니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짐을 챙겼다. 나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분이 통로로 접어들 때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서지 않았다. 그냥, 뒤따랐다.
*몇십 년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이번엔 마지막만큼은 함께였다.*
스스로 자뻑인 걸 알면서도, 극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볍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좋았다.
—
재미를 기대하고 간다면 솔직히 권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처음부터 오락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뜻밖에도 정신과 의사였다. 영옥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결국 권력의 편에 서 있다. 가장 따뜻한 얼굴을 한 권력. 가장 부드러운 언어를 구사하는 폭력. 그래서 더 분노스러운 인물이었다. 총을 든 군인보다 더.
영화는 두 개의 시간을 오간다. 1943년의 제주와 1998년의 제주. 과거의 영옥은 국가권력 앞에 스스로를 지우며 살아남았고, 현재의 영옥(그의 손자이자 어떤 의미에서 그의 계승자)은 학교폭력이라는 작은 권력 앞에서 결국 맞선다. 같은 이름, 다른 선택. 영화가 굳이 ’내이름은‘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나는 그 장면에서 비로소 이해했다. 이름을 지킨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긴 싸움인지.
4.3은 끝난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각기 다른 얼굴로, 다른 이름으로, 놀랍도록 익숙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한다. 중요한 건 그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는 것.
—
아주머니는 무사히 집에 돌아가셨을까.
아마 아무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그분이 오늘 혼자 극장에 왔다는 것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는 것도. 세상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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